이거, 쓰고 보니 사실상 2일차 후기가 되어 버린 듯한 인상이 강하게 드는군요. 이 날의 여행 중점이 딱 하나였던데다가, 특히나 여행과정 자체가 이번 프로젝트의 포인트였기 때문에... 뭐 어찌할 수 없는 거겠지요.
여튼, Railro Project 2009, 2번째 후기. 갑니다.
많은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
Railro Project 2009 (20090806 ~ 20090812)
- Project 1 : 마산야구장에 가다 (20090806) - Project 2 : 부전에서 목포까지, 근성으로 타는 경전선 (20090807) - Project 3 : 충북선 저녁열차, 로컬선에도 빛이 들려면 (20090808) - Project 4 : 산골짜기 한가운데, 아우라지에 가다 (20090809) - Project 5 : 가 보기 힘든 간이역, 승부역 (20090809~10) - Project 6 : 새로운 희망을 보다, 희방사역 (20090810) - Project 7 : 장항선 유람 - 이설 그 후 (20090811) - Project 8 : 섬진강 기차마을, 3년 전과 지금은? (20090811) - Project 9 : 철도문화체험, 연산역에 가다 (20090812)
알람을 삼중 사중으로 맞춰 놓은 덕분일까요. 다행히 전 05시 40분에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알고 보니 Lyubishev 님이 모기 때문에 잠을 하나도 못 잤다는 것. 제가 타야 할 열차 시간도 굉장히 일렀다 보니, 재빨리 세수하고 발 닦고 자취방을 나섭니다. 05시 55분. 사실 이 시간이면 버스를 타도 충분히 부전역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게다가, 버스가 지하철보다 약간 쌉니다. =_=;;; 그래서 김밥 두 줄을 사 들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다만 첫차 시간대라서 그런지 버스가 잘 보이지도 않는데다, 그나마 부전역으로 바로 이어 주는 버스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역으로 향합니다. 그렇지만 겨우 90원 차이 가지고 이러고 다녔다니. 좀 씁쓸하네요. 아무리 돈 아끼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런 장거리 열차를 탈 때는 보급이 필수적입니다. 몸은 지루해도 입은 심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 생각도 이 견해에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06시 30분경 부전역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거리들을 하나도 사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역 바로 앞의 부전시장보다는 역 내에 있는 편의점 등에서 먹을거리를 사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서 시장을 그냥 통과해서 역으로 들어갔었는데, 완벽한 실책이었습니다.
역 내에 있던 스토리웨이는 기대와 달리 닫혀 있었고, 또 그 시점에 시계를 살펴보니, 다시 부전시장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는 아주 애매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화장실을 갔다 오니 06시 45분. 열차 출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은지라 전날 마산에서 저녁거리와 함께 사 놓은 물통에 물도 채워놓지 못하고 열차에 오르는 사태를 맞고 말았습니다.
양쪽으로 다 근성열차가 출발합니다. -_-;
플랫폼에 내려와서.
열차에 올라 보니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4량에서 3량으로 경전선 계열 열차에 연결된 객차 수가 줄어든 것은 그렇다 쳐도,[각주:1] 어떻게 자리가 꽉 차 있지?! 하지만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실제로 이 구간에서 평상시에 열차를 이용할 어르신들이나 통근 승객들보다는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보나마나 전부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열차를 탄 승객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걸어 보니, 역시나. 정말 내일로 티켓에 대해서 홍보가 많이 되기는 한 모양입니다. 2007년에는 내일로 티켓으로 여행하는 사람을 찾기 정말 힘들었다는 걸 생각하면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하하, 이런 거 보고 격세지감이라니...)
Special Thanks ) '제대로 가기'님 원래 부전에서 구포까지 표를 끊고 탑승하셨엇는데, 차내에서 무슨 생각이셨는지 마산까지 표를 연장해서 제 옆자리에 계속 같이 앉아 가셨습니다. 아마도 8시간 완승 프로젝트가 힘들지는 않을까봐 저를 배려해 주신 게 아닌지 싶네요. 그 시간동안 심심하지도 않고 참 좋았습니다. 여기에서 감사를 전할까 합니다.
약 먹을 물조차 없었기 때문에, 삼랑진에서 정차시간이 잠시 길어졌을 때 승무원 분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완승에 도전한다는 말과 함께 물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니, 그분께서는 저보고 고생한다며 다음 역인 한림정역에 연락해서 물을 구해다 주겠다는 말을 하시더군요. 전 그냥 500ml짜리 생수병에 물 한 통 담아 주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어머나? 1.5L짜리 페트병에 물이 한가득... 전 그 때 그렇게까진 필요 없었다면서도 고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이 지면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적어야겠군요 :D 마산 소속 승무원이셨는데, 성함을 제가 정확히 보지 못해서 여기에 적어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경전선의 진정한 맛은, 마산 이후부터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마산까지는 서울에서 오는 직통열차들이 대부분 들어가는데다, 지형상에서도 그렇게 어려운 요소가 많지 않아 핸드폰이 제대로 터지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들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마산만 넘어가면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터널 안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더군요. 통신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질 않으니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합니다. 승하차 자체가 얼마 없으니 객차 밖에 나갔다 올 유인도 떨어지고, 안에는 경전선 열차를 정말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탑승해 다들 뻗어 있는 장거리 내일로 여행객들 뿐. 말을 걸 이도 없는 이 지루한 상황에서 제가 뭘 하죠? 게다가 비도 차창을 심심찮게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주수목원역을 지나 반성역쯤 오니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후 계속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합니다. 차창을 무섭도록 때리다가도 거짓말같이 조용해지고, 또 조금씩 때리다가 무섭게 때리고. Railro Project 2007이 또 다시 오버랩되더군요. 여기서 사진이라도 찍으려니까 역시 AF가 부실한 펜탁스 바디는 절 괴롭힙니다 (...) 차창 사진을 찍으려는데 빗방울이 많다 보니 초점이 빗방울에 갔다 풍경에 갔다... 에라이. 그냥 사진찍는 건 포기.
이 정도쯤 되니까 이젠 잠까지 쏟아져 맨정신으로 8시간을 버티려던 저를 방해합니다. 전날 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열차 안에 있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 눈꺼풀은 무거워져 갔습니다. 진주 가까이 오니까 10분쯤 기억이 끊기는 부분도 한 두어 차례 정도 나오더군요. 하하. 맨정신으로 8시간 버티기 실패. :P
안 그래도 삼랑진에서 이 열차를 견인하던 7001호 기관차가 브레이크 이상 등으로 인하여 응급조치를 하느라 2분 더 정차해서 지연 운행되고 있었습니다만, 순천에서 이 열차는 기관차를 교체했습니다. 비가 오는 등 날씨도 좋지 않아 더는 안 되겠다 싶었던 듯합니다. 원래 순천에서 2분만 정차하는 열차가 이렇게 기관차를 갑작스레 교체하게 되는 바람에 전 10분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전 부전에서 출발할 때 사지 못했던 먹을 것들을 사 오자...는 생각으로 일단은 열차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비 내리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비도 엄청 쏟아지는데다 어째, 역 승강장과 역사 간의 거리가 엄청나게 멉니다? 알고 보니 여기도 2011년 전라선 KTX 투입 관계로 역을 대개조하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전주역처럼 기존 역에다가 열차가 정차할 수 있는 길이만 늘려서 역을 바꾸나 했더니, 순천역은 아예 역을 뜯어고쳐서 새로 짓는다더군요.
새로운 구조물 공사중.
덕택에 흉물스럽긴 하지만, 완공되면 멋있겠죠.
옛날 보던 순천역은... 이젠 엄청 낡은 티를 냅니다.
그런고로 매점의 위치도 굉장히 멀어졌습니다. 게다가 지하도가 사라져 임시 건널목을 이용하는 통에 지붕이 없는 구간도 굉장히 길었습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우산도 없이 열차 밖으로 나선 저는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덕택에 저는 보성에 다다를 때까지 신발을 벗어 놓은 채 가만히 있으면서 옷과 소지품들을 말려야 했습니다. 마산에서 교대해서 여기까지 승무하시는 승무원 분이 매점에 갈 때만이라도 우산을 씌워 주셨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더욱더 큰일날 뻔했습니다. 프로젝트도 뭐고 없이 그냥 목포역 도착할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서 몸을 말리고, 또 냉방 때문에 추워서 덜덜 떨고 그랬을 상상을 하니 지금은 쓴웃음이 나옵니다.
보성을 지나니 이제 제가 생각했던 패턴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두 눈으로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승객의 수는 일단은 경전선 서부보다는 동부 쪽이 훨씬 많습니다.[각주:2] 그리고 승객들은 대체로 주요역을 지나면서 '물갈이'된다는 느낌이었는데,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주요역은 마산 / 순천 / 보성 / 광주송정 이렇게 네 곳이더군요. 또, 경전선 구간에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승객들이 점점 감소하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허수 승객이든 실승객이든 승차량은 경전선 동부 쪽이 더 많더군요.(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왜 경전선 서부 지역에 경전선 복선화에서 뒤쪽 순위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것 외에도 포인트가 있었다면, 허수승객(내일로 승객)들로 인한 피해(?)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산에서 순천까지 승무하셨던 승무원 분과 객실 통로에서 대화를 해 봤는데, 내일로 승객들이 많이 타긴 많이 타지 않느냐 하는 저의 질문에 "지금은 그래도 좌석에는 다 앉지, 1주일 전[각주:3]에는 객차 3량에 내일로 승객들로 좌석은 물론 입석까지 꽉꽉 들어차는 통에 객실 순회조차 못했다"라고 답을 해 주시더군요.
사실 코레일 측에서 내일로 티켓을 발매하는 이유가, 과소 수요(...)를 보이는 경전/중앙/영동/태백선 계열의 로컬 열차들에 대해 좌석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건 목적의 초과 달성으로 인해 도리어 운영자나 여행자나 양쪽 모두 골치 아프게 되는 그런 사례가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습니다. ※ 추후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루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보성 이후의 구간은 2008년에도 한 번 휴가 때문에 온 곳이라 어째 풍경이 익숙합니다. 다만 이 주변에서 또 다시 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도대체 이렇게 많이 비가 와 버리면, 내리고 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스쳤습니다만, 다행히 광주에 가까이 오자 비가 그칩니다. 효천역부터는 날씨가 맑더군요. 다만 물은 많이 불어 있었습니다.
화순에선 무섭게 비가 오더니...
광주는 말끔합니다.
광주송정역(구 송정리역)을 지나고 나면 그 길고 긴 경전선을 벗어나 드디어 호남선 구간입니다. KTX 운행 때문에 쫙쫙 펴져 있는 선형. 그리고 무섭도록 질주하는 열차. 그렇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려 버렸기 때문에 열차는 좌석의 1/4도 채우지 못한 상태로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또 중간중간의 승하차도 미미한 수준이었고요. 물론 한낮이긴 했습니다만, 호남선의 직선화에 집착했던 나머지, 역이 해당 지역의 중심지에서 멀어져 버린 상황[각주:4]도 이런 좌석 상황에 한몫 보탠 것 같습니다.
하여튼, 열차는 8분 지연되어 목포역에 들어왔습니다. 기관차 고장, 그리고 그에 따른 기관차 교체로 인한 지연은 역시나 회복하기 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든 직후... 그래도 경전선 열차의 전 구간을 완주했다는 생각에 내리자마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해냈다!
도착했다고요!
호남선 종착역, 목포.
선로도 끝!
Special Thanks) 동네천사 님 (철도 갤러리 닉네임을 적었습니다) 아주 오래간만에 이 분의 고향인 목포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오래간만에 만난 덕택에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구면인데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핸드폰 신호음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 조성될 정도였으니.) 1일차에 너무 급작스럽게 약속을 잡은 데다가 염치도 없게 밥까지 얻어먹어 간지라 조금은 죄송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ㅁ; 목포 구도심에 대한 설명과 순대골목에서의 늦은 점심식사. 정말 고마웠습니다 :D
동네천사 님과의 만남. 그렇지만... 이 날은 광주에 있는 후배 집에서 자기로 했기 때문에,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광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목포에서 광주로 가는 새마을호 #1104열차를 이용했습니다. 안의 좌석은 종아리 받침대도 없는, 이른바 '폭탄좌석'이었습니다만, 피곤했기 때문인지 잠이 아주 잘 오더군요. 광주송정역에 도착할 때쯤 잠에서 깼는데, 잠이 덜 깬 상태로 내렸기 때문에 역에서 1시간쯤 멍하니 승강장을 바라보면서, 또 맞이방 TV를 보면서 있다가 후배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남광주역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서 들어가야 하는, 좀 먼 곳이더군요. =ㅅ=;
후배 집으로 이동하다가 본 구 남광주역 자리는 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광주역은 이미 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앞에 큰 시장이 하나 있더군요.
남광주사거리의 한켠이라는 편리한 위치에 역이 존재했었기 때문일까요. 이제 이 자리에는 역사(驛舍)도 존재하지 않아서, 남광주시장의 존재와 바로 앞의 남광철교, 공원화된 구 경전선 철도, 그리고 "남광주"이라는 지명만으로 이 주변에 역이 있었고, 경전선 철도가 지나갔다는 것을 짐작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플랫폼이 있었을 자리에는 구형 무궁화호 객차가 서 있었고, 그 위에는 어느 단체가 조성한 문화시설이 조성되어 있더군요. 그래도 이쪽 부근은 폐선 부지에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는 등, '철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라도 알 수 있는 곳이 많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웬 문화 관련 단체에서 이런 걸 준비한 듯합니다.
남광철교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뒤로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요.
이렇게 사진을 찍고 후배 집으로 들어갑니다. 봉선동까진 은근히 돌아가더군요. ㅎㅎ
오랜만에 후배녀석을 만나 식사도 하고, 주변 동네도 한 바퀴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집에 있는 책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하다가 12시쯤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