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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정책평가

지하철 노약자석 확대 - 과연 제대로 가는 것일까

※ 이번 게시물은 서울지하철을 위주로 작성한 것입니다.
(부산지하철 1호선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의 논의대상은 "노인"으로 한정합니다. 기타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많으나, 일단은 노약자석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어르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기 오른쪽, "임산부, 노인, 몸이 불편한 사람"의 픽토그램이 보이시나요? 이건 서울메트로 1호선 차량입니다.

지하철 객차 한 구석에는 총 54석(7인석 6개, 3인석 4개)의 자리 중 3 × 4 = 12석 정도의 노약자석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노약자석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또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관계로, 이제는 수도권 전철 각 운영 주체들간의 노약자석 늘리기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지하철 노약자석 늘린다
[한겨레]2007-05-02 10면 지역 뉴스 331자 [한겨레만 검색] [새창보기]
지하철노약자석의 좌석수가 한 량에 12자리에서 19자리로 늘어난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5월부터 5~8호선에 대해서 노선별로 전동차 1개씩을 지정해 객실별로 현재 노약자석 외에 객차 중앙 7인용 의자를...

지하철 손잡이 낮아졌다
[세계일보]2007-05-02 11면 지역 뉴스 533자 [세계일보만 검색] [새창보기]
서울 지하철에 어린이 등 키가 작은 승객을 위한 ‘낮은 손잡이’(사진)와 노인·임산부 등 ‘교통 약자’를 위한 ‘배려석’이 추가 설치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1일부터 지하철 5∼8호선 차량 중 호선별로...


지하철 1호선 좌석 절반 ‘노약자석’으로
[동아일보]2007-12-17 16면 지역 뉴스 556자 [동아일보만 검색] [새창보기]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는 17일부터 지하철 1호선 운행 차량에 현재 객차당 12석인 ‘노약자 보호석’과는 별도로 14석의 ‘교통약자 배려석’을 추가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16일...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금 입장에서 노약자석을 늘린다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고령화 추세가 아직 노약자석을 저렇게 늘릴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2006년 현재 전국의 노인 비율은 9.5%. 물론 이후에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미 전체 좌석의 22%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노약자석을 지금 벌써 늘려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게다가 또 다른 문제는, 어르신들이 운임을 단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운임은 무료입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이 운임 무료를 이용해서 소요산, 천안, 인천 등 종점이란 종점은 다 돌아다녀서 운영주체들의 적자에 한몫 제대로 하고 계십니다-_-...
자리는 마련해 줬는데 운임에 보탬은 한 푼도 되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노약자석은 늘린다. 도대체 정당하게 운임을 지불하고 승차한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등은 어디에 앉으란 걸까요?

적어도, 지금의 노약자석을 늘리는 방향의 운영 정책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최소한 운영주체들이 이 정도는 했으면 좋겠습니다.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임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각 운영주체에서 노약자석을 늘리려면, 단 100원이라도 어르신들에 대한 운임을 받고서 노약자석을 늘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노인 무임제도를 개선해서 대구지하철처럼 카드식으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무임승차 자격이 되는 어르신들만 무임승차가 가능하도록 할 수도 있겠고요.(지금은 무자격자를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좀 됩니까.) 이를 통해 운임을 지불하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는 거죠.
또한, 노약자석을 정 늘리려면 어르신들의 입장뿐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들 간의 사회적인 합의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미풍양속입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 자리 양보가 거의 강제된, 그래서 운임을 지불하고 승차하는 시민들에게 도리어 피해가 갈 수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하겠지요.

ps. 그러고 보니, 공항철도에는 어르신들의 승차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770원"이라는 운임이 장벽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