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5일.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찬바람 쐬어 가면서 일하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정말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 교지편집을 담당하셨던, 지금은 퇴직하신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살짝 놀랐던 건 그게 보이스톡으로 왔다는 거. (왜 제 번호가 날아가셨나요ㅠ 전 잘 갖고있었는데...)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못할 만큼 꽤 오래 전이었던 것 같은데,
마침 문예부 후배들이 찾아왔는데 제 얘기가 나왔다 해서 일부러 연락을 했노라고 말씀해 주시네요.
그리고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통화는 오래 못했지만, 후배들의 이야기.
제가 정말 똘망똘망하다고 눈여겨보고 싶어했던 후배는 어느새 애가 셋이라 하고,
제가 고3때 찾아가서 한번 봤었을, 당시 중1이었던 후배는(92년생이라 했으니까 맞을거예요) 저를 기억한단 얘기를 하면서 괜찮은 사람 주변에 있으면 진짜로 소개시켜주고 싶다느니 그러고 있습니다.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 내년에 선생님 팔순이시라고 저에게 연락하겠노란 이야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잠깐 떠올렸던 2003년. 벌써 21년 전이네요.
프로필에는 중학교까지 적지는 않았지만 저는 서울 용곡중학교 19회 졸업생입니다.
당시 개인적으로 꽤 암울한 시기였어서 지금도 그렇게는 기억에 올리고 싶진 않은 시기입니다.
2004년, 졸업식 때 남긴 사진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걸 억지로 찍었기에 표정이 다소 암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나마 몇몇 그래도 나를 챙겨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어쨌든 끝까지 버티고 제대로 졸업은 했었네요.
이때 기억들 중 몇 개가 너무 안 좋아서 고등학교 이후로는 침묵하고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중학교 때 했던 일들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학교정보도우미'로 학교 내에서 PC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제가 먼저 투입돼서 일해보기도 했었고,
그리고 또 하나 했던 것이 발간주기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용곡소식'이라는 교지의 편집이었는데, 그때는 문예부가 없었기에 선생님 역할을 보조하는 기자 역할을 부여받고, 대신 '코소닉의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고정 칼럼을 썼었습니다.
프로필에 제 닉네임의 시작이 1999년 9월 21일이라고 적었듯이 Korsonic이라는 ID/필명과의 인연은 굉장히 깁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중간중간 다른 닉네임을 쓰기도 했었지만,
지금 쓰고 있는 'Korsonic'이라는 닉네임이 완전히 굳어지게 된 때가 바로 2003년이었습니다.
나름 정말 중요해야 할 기억인데 여태 그걸 신경쓰지 않고 있었네요.
나중에 문예부가 생겼지만 그래도 연락 준 후배들이 저를 동아리 선배로 생각해 주고 있다는 데 큰 감사를 느낍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바라본 2003년이 그나마 추억할 것들이 있는 해였다는 것을 돌아보게 해 줌에도 감사를 느낍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선생님들이 다 바뀌어 갈 일이 없었지만 고등학생 때는 중학교를 종종 찾아가고 그랬었는데,
혹시라도 중학교에서 저를 부르는 일이 생기면 한번 가 볼까봐요.
그런데 제가 그 부름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한국항공대학교 연구동에서 공부하다가 이 글을 쓰네요.
아직은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니 조금더 열심히 수련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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