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하는 바람에 글이 애석하게도 묻혀,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2021년 5월쯤이었나. 이런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중부매일이라는 지역언론에서 정치행정부장을 하고 있던(지금은 이직한 것 같다. 같은 해 10월 이후 해당 언론에서 이 사람의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데스크 칼럼이었다.
2021-05-20 중부매일 : "철도 적폐 오송역, 구경만 할 것인가"
[데스크 칼럼] 박재원 정치행정부장
호남고속철 분기이자 국토 'X'자축 중심인 KTX오송역이 '철도계 적폐'로 몰리고 있다. 싸잡아 충북도와 청주시는 오송역을 탄생시킨 지역 이기주의 '끝판왕'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을 보면 철도 적폐, 욕먹는 이유 등 오송역은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오송역은 천안~아산~대전보다 수요적 측면과 배후도시 연계성 등 경제성이 극히 떨어지는 노선이라고 평가한다.
도심과 상당히 동떨어져 청주시민조차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오송역의 탄생 배경으로는 '폭탄테러 위협'을 갖다붙인다. 과거 민간단체에서 충북을 지나지 않으면 철도를 폭파하겠다고 한 과도한 발언 사실을 내세워 마치 충북·청주가 폭도들의 집단으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고 오송역이 호남고속철 분기역으로 지정되는 것은 철도역사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한다. 오송역보다 천안·아산을 경유하면 요금이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데 지역 이기주의로 피해는 이용객이 보고 있다고 한다.
충북도에서 주장하는 '강호축'이나 'X'자축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몰아간다. 전국 모든 지역의 물동량과 인구가 서울로 집중하는 상태에서 강원권과 호남권이 오송역을 기점으로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강호축은 현실과 동떨어진 기대라고 주장한다.
영남권과 호남권 역시 철도를 이용, 오송역을 거쳐 교류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고 한다. 오히려 권역별로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것이 오송역을 경유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도 설명한다. '어찌됐든 서울만 가면 된다'가 아니라 '빠르고 편하게 서울로 가야한다'가 오송역은 '아닌' 이유다. 그나마 세종시 이용객들로 오송역이 연명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접근성이 떨어져 세종 관문역도, 청주 관문역도 아닌 정체성 '무역(無驛)'이라는 식으로 비꼰다.
오송역이 이렇게 당하는 데도 충북도·청주시는 구경이다. 이들이 주장을 인정하는 것인지, 반박 논리를 찾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오명(汚名)'을 그대로 두면 사실이 된다. 반응 중 하나가 '오송역은 있어야 한다. 이기심으로 똑같은 역을 만들지 않으려면 오송역이 대표돼야 한다.'이다. 쥐구멍이 생각날 정도다.
이래도 충청권 광역철도를 실현하겠다고 하는 그대들이 가만히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오송역을 적폐로 몰아가는 이들에게 청주도심 통과 광역철도를 국가계획에 반영하겠다는 사실은 또다른 소재가 된다. 아마도 '인구 100만도 안 되는 동네 주민 편하도록 국민세민 수조 원을 내놓으라는 지역 이기주의가 또 충북에서 발동했다'고 지탄할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러면서 계획을 조목조목 짓이겨놓을 것이다.
'너무 젖으면 불도 붙지 않는다'는 대사가 있다. 흠뻑 젖어 광역철도까지 못쓰게 하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박재원 기자 ppjjww123@naver.com
내용을 보고 나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물론 이들의 또다른 지역이기주의 걸작인 "충청권 광역철도"에 대한 당위성 확보를 위한 글이라는 데서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정말 우습게도 저 칼럼 내용에 언급한 전제 자체가 거짓이라고 정면으로 말하고 있는 기사가 아직도 같은 언론사 홈페이지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2010-10-14 중부매일 : "지금도 가슴 뭉클한 한편의 대하드라마"
이상록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오송유치 추진위원장을 만나다
'충북 소외' 소식에 1989년 민간사회단체 중심 도민 궐기
"3톤 트럭에 폭탄실어 폭파" 협박까지…무모했지만 절박
노태우 대통령 방문 재검토끝 승인 "155만 도민의 승리"
오는 11월1일 경부고속철도 오송분기역이 개통된다. 오송역의 개통으로 오송의료과학산업단지, 첨단의료복합단지, 오송바이오밸리등 오송이 국내 바이오산업의 요람으로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오송역 조성과정은 쉽지않았다.1989년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오송역 유치과정은 애환과 눈물로 점철됐다는 말이 나올만큼 드라마틱했다.
특히 당시 행정기관의 무관심속에 오송분기역 유치운동이 범도민운동으로 승화되면서 '충북인의 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나올만큼 온갖 역경을 딛고 경부고속철도 노선변경과 오송분기역 유치를 이끌어낸 이상록(83) 호남고속철도분기역 오송유치추진위원장은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한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교육자출신의 이 위원장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90년대 지역현안문제에 앞장서왔다. 오송분기역 유치위원장뿐만 아니라 경북과 큰 갈등을 빚었던 문장대 용화온천개발저지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용화온천개발을 무력화시켰으며 1990년에는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맡아 제71회 전국체전에서 충북 종합 3위 달성을 지휘했다.
팔순의 고령에도 지난 12일 전국체전이 열리는 경남 진주를 방문해 충북선수단을 격려하고 돌아온 이위원장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오송역유치의 비화를 밝혔다.
▶오송역 유치에 관여하게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호남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기점역을 경부고속전철 천안역에서 공주를 경유해 논산으로 신설하는 68㎞의 노선안이 정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충북을 소외시킨 것이다. 이에따라 1989년 우리지역 학자, 민간사회단체에서 준비모임을 갖고 위원장으로 남궁박사와 권태성씨를 뽑았으며 나역시 위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30일 정식으로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연세가 많은 두분은 2선으로 물러나고 내가 청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회의에서 위원장으로 뽑히면서 본격적으로 앞장서게 됐다."
▶당시 보도를 보면 오송역 유치에 우여곡절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에서 충북을 배제한채 조치원 서쪽 4-5㎞쯤에 위치한 금남으로 돌아가는 안을 주장했다. 추진위에서 건교부에 수차례 항의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이때문에 나와 박종원(전 한국병원이사장·작고)부위원장이 오송분기역으로 하지 않으면 부강-신탄진과 부강-내판간 협곡에 3톤트럭으로 폭탄을 실어 폭파시키겠다며 공공시설물이 파괴되지 않도록 재고하라고 서면으로 요구했다. 감옥에 갈 각오로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지만 당시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벼랑끝 전략이 통할 수 있었나요.
"당시 노태우대통령이 지역정서가 험하다는 보고를 받고 91년 9월 충북을 방문했으며 이동호 지사와 임인택 건교부장관을 청남대로 부른뒤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추진위도 기술적으로도 2.5㎞만 늘리면 오송분기역으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따라 1991년 임인택장관이 오송분기역을 승인했다."
▶오송역 조성과정도 만만치않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오송분기역 유치가 마무리됐으나 이번엔 언제 지어줄것인가가 관건이 됐다. 정부에선 청주권 인구가 100만명이 넘어야 착공일정을 잡겠다는 것이다. 당시 청주인구가 40만도 채안된 상황에서 오송역 착공이 요원해질 수 있었다. 이때문에 오송역 조기착공을 위해 다시 투쟁에 나서 청주·청원은 물론 진천과 조치원 등 배후지까지 포함하면 100만명이 넘는다는 논리로 설득해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의 지시로 오송역 건설을 승인받았다."
▶추진위를 해산하기전 철도청을 상대로 오송분기역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지요?
"추진위를 해산하면서 충북개발회를 발족했다. 이때 철도청에 다섯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첫째 오송역 유치 기념관 조성 할 것 둘째 기념탑 조성할 것, 셋째 고속관광버스 정류장을 만들것. 넷째 택시승강장 만들것, 다섯째는 충북선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12선을 14선으로 확장할 것등을 요구해 모두 관철시켰다."
▶벌써 21년이 흘렀습니다.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충북도민의 힘으로 만든 경부고속철도 오송분기역은 충북발전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도에서는 협조하기는 커녕 청와대로부터 혼났다며 제발 나서지 말라며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민들이 힘을 모아 싸워서 오송분기역 유치를 관철시켰기 때문에 155만 도민의 숙원사업이 현실화 된 것이다." / 박상준
■ 오송역 유치운동 추진일지
▶1989년 9월 4일 정부, 경부 고속전철 서울∼대전∼부산 기본노선 확정(청주역 배제)
▶1989년 9월 27일 충북시민회 고속전철 유치 성명서 발표 및 기자회견
▶1989년 10월 2일 정종택의원 국회 교통체신분과위원회에 전철통과안 제시
▶1989년 11월 충북시민회 고속전철 유치 재촉구
▶1989년 11월 20일 충북지역개발회 서한 발송
▶1990년 1월 22일 충북시민회 회원 7명 철도청 방문
▶1990년 1월 30일 경부고속전철역 충북권 유치추진위원회 결성대회
▶1990년 2월 2일 추진위 전도민 서명운동 개시
▶1990년 2월 15일 범도민 궐기대회 개최(4천여명 참석)
▶1990년 2월 16일 추진위 교통부장관 방문, 대선 공약사항 이행 촉구
▶1990년 3월 2일 범도민 2차 궐기대회 개최
▶1990년 3월 24일 충북지역개발회 고속전철역 충북권 유치를 위한 좌담회 개최
▶1990년 4월 2일 노태우 대통령 경부고속철도 노선 충북 통과방안 검토 지시
▶1990년 4월 13일 청주대 총대의원회 고속전철역 충북유치 1만 학우 결의대회
▶1990년 4월 22일 추진위 고속전철 청주 본선 유치 촉구(교통부 지선연결 의혹제기)
▶1991년 6월 4일 고속전철 유치 타당성 세미나
▶1991년 6월 25일 정부, 경부고속전철 노선 발표(청주 지선으로 확정)
▶1991년 6월 26일 경부고속전철 신청주역 건설에 관한 토론회(중부매일·MBC 주최)
▶1991년 7월 25일 청주시의회 경부고속전철 청주경유 건의문 채택
▶1991년 7월 29일 고속전철 본선 유치 위한 범도민 투쟁위원회 결성
▶1991년 7월 30일 추진위 본선 유치 강경 투쟁 성명서 발표
▶1991년 8월 5일 추진위 본선역유치추진보고회 개최
▶1991년 9월 10일 정부, 경부고속전철 본선 충북 통과 발표
▶1992년 9월 30일 경부고속전철 본선역 충북권 유치 추진백서 발간
▶2003년 11월 14일 건교부, 오송 경부고속철도 중간역 추가설치 확정
▶2008년 6월 25일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분기역 기공식
▶2010년 11월 1일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개통
박상준 기자 sjpark@jbnews.com
덕택에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하나 작성해야 했다. 오로지 사실만을 가지고.
당연히 반향이 클 리는 없었지만, 그떄 당시에도 "이러한 말도 안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데 의의를 두고 작성했기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기록을 다시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굵은 글씨가 중간에 종종 있는데, 페이스북에는 굵은 글씨를 넣을 수 없으나 주장하는 바가 있었다 보니 굵은 글씨가 여기 그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습게도, 오송역이 "철도계 적폐"라는 주장이 안타깝다면서 제시하는 것들은 전부 사실이다.
'폭탄테러 협박'은 무려 이 칼럼이 게재된 중부매일 2010년 10월 14일자에 "지금도 가슴 뭉클한 한편의 대하드라마"라는 제목으로 버젓이, 자랑스럽게 게시되어 있다.
지역이기주의로 이용객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근거도 너무 확실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2005년 8월 22일, 제17대 국회 제255회 제1차 건설교통위원회에서 나온 당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발언을 말미에 발췌한다. 이 사람은 이래놓고 다음날 같은 이야기를 한 번 더 했다. 이래놓고 19km, 5800원에 대한 보상은 어느 누구에게도 해 주지 않았고, 그것으로 쌓인 금액은 2020년 현재 6,235억원에 달했다. (뜬금없이 운임 결정권이 없는 한국철도공사의 2020년 국정감사에서 이 내용이 주승용 당시 국회의원에 의해 나온 바가 있다.)
중부매일은 나를 부장으로 채용해라. 차라리 이제까지 줄곧 오송역에 대한 기억투쟁(?)을 생애를 걸고 하는 내가 쓰는 오송역 예찬이 훨씬더 그럴듯하지 않을까?
* 국회 회의록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검색이 가능하다.
◯최인기 위원
알겠습니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요.
두 번째로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문제는 지난번에 건설교통위원회를 한 번 소집해서 하겠다고 하다가 정부 여당 간담회로 대체를 했든가 해서
저는 민주당이기 때문에 어찌 됐는지 뒤에 얘기도 못 들었습니다마는, 어찌됐든 그 결정의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정부에서 그동안 다섯 차례의 연구 용역이 있었습니다. 90년 국토연구원에서 호남선 고속전철화사업 타당성 조사, 94년, 97년도에 했었던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 99년도 21세기 국가철도망 구축 기본계획, 심지어 2003년 11월에 건설교통부가 호남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 조사 연구에서조차도 천안아산역을 분기점으로 하는 것이 국토 전체 발전상 옳다라고 결론이 난 사안이 이제 오송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왜 바뀌었는가 논리를 봤더니 결과적으로 남한의 X축을 오송역으로 삼겠다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과거 기본계획에서 정부가 천안아산역이 X축의 중심이 되어서 남북통일시대에, 다시 말씀드리면 TCR, TSR까지 나가는 X축의 중점을 천안으로 삼겠다고 했었던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그 원인 중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변화된 여건의 하나뿐이라고 나는 보고 있고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됐다고 해서 그 주 이용객인 호남 사람들의 이용 편익을 무시하고 개발의 촉진 정도가, 그 수혜가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호남고속철도가 건설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평가위원회에서 호남 지역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결정하는 과정도 문제였고 번복한 이유도 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19㎞나 돌아가고 요금도 5800원 더 내고 4분 더 걸리고 이런 것에 대해서 지금 호남 사람들이 납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를 제가 더 제기하기보다는 몇 가지만 장관께 물으려고 합니다. 분기역 결정과정에 문제가 너무 많았던 것은 추 장관께서 광주 전남까지 가서 설명해서 설득하려고 했었습니다마는 설득이 안 됐다, 여기에 대해 재심의할 용의가 있습니까?
◯건설교통부장관 추병직
없습니다.
◯최인기 위원
없지요? 그러면 지금 우회함으로서 호남 사람들이 동일한 단거리보다도 요금을 5800원 정도 더 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 1만 명이 이용하면 결과적으로 1년간 180억 정도 부담을 더 하게 되는데 추가부담에 대해서 요금을 내릴 의향이 있는가요, 없는가요?
◯건설교통부장관 추병직
저희들이 계산할 때는 왕복 4400원으로 나왔는데, 19㎞에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호남 분들의 이용편의라든가 부담 증가액을 감소시킨다는 측면에서 과거부터 추가부담은 없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의 원칙입니다, 방침입니다.
◯최인기 위원
그러면 방금 장관 이야기대로 오송역으로 우회함으로서 4400원이 더 추가되는 일이 없도록 요금을 책정하겠다 하는 건설부장관의 약속으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건설교통부장관 추병직
예,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글은 남는다. 기자가 남긴 것은 결국 역사의 기록이 된다.
필자는 항상 세상에 떠다니는 수없는 사실들을 취사 선택하여, 진실을 발굴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왔다.
근데 뭐가 하나 빠진 모양이다.
아마도 '진실'이라는 문구 앞에 '자신이 작성한 기사를 통해 만들어낸'이 빠지지 않았을까?
배경자료를 조금만 찾아보면 상황이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가 있는데도 저런 기록을 남기는 것을 보면.
아마 내가 기자를 꿈꾸었다면 진작에 그 진로로 갔을 것이다.
20년 전인 중학교 3학년 때(2003), 정말 마음대로 써대서 칼질도 많이 당했지만 교지에 고정칼럼도 써 봤고.
딱히 지금 와서 기자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요즘 벌어지는 일들은 그저 내 가슴속에 한숨만 키우고 있다.
※ 이번 글은 사실 2편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둔 글입니다. 이번 글의 내용은 이미 제가 인터넷으로 작성했던 내용에 관련된 것이고, 현재 업무와 관련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대로 업로드합니다만, 작성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2편이 작성되면 제목이 바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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