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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sonic/내이야기

왜 철도 좋아하는 사람이 항공으로 진로를 틀어버린 거야?

사실 제목의 질문은 제가 상당히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경조사나 다른 일이 있을때 만나는, 혹은 자주 연락하는 대학 동기들마저도 "넌 어째 철도에 그렇게 미쳐 살던 애가 갑자기 공항공사를 가서 항공일을 하고있냐..."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박사학위 과정도 제때 나간다는 가정 하에서는 반환점을 슬슬 돌고 있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써 볼까 합니다.
사실 이상하잖아요. 방송 나가서조차도 철도인이 꿈이라던 사람이 왜 갑자기 항공으로 틀어 버려서 이렇게 10년차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


#1
2015년 당시에 항공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먹을거리가 많아 보여서 였습니다.
시계를 2014년으로 잠깐 돌려볼게요. 동남권 신공항으로 인해 한창 시끄러웠던 당시에, 석사과정으로 다니고 있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가덕도와 밀양 후보지 모두를 답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퍼포먼스가 잘 나오지 않는 석사과정생이었던 저도 논리가 빈약한, '이 정도는 그냥 쓰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글들을 읽다 보니 항공으로 진로를 트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정도만 써도 어디가서 박사님 교수님 소리 듣는데 내가 못 할 건 뭐야?!

심지어 그때 철도 수요예측 과제 몇 개를 연구보조원으로 참가했는데, 2020년대 이후에 철도 쪽에 먹을거리가 사라져 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 시기 주변의 신규개통 노선들도 별로 없어 결국은 한정된 파이를 나눠먹는 싸움이 될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제 예측이 맞아떨어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2
그리고 비중이 꽤 컸던 것이 당시에는 한달 쯤 사람을 폐인 만들어 버릴 정도로 충격이 컸던 이별이었습니다. 당시 만나고 있던 친구는 본인이 유학을 가서 자기 진로를 그대로 밟아나가겠다 해서 말리지 않았던 상태였는데(잘 되러 가겠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말립니까...),
어떻게든 원거리로 관계를 이어가려고 시도했던 것이 잘 되지 않아 결국은 2015년 1월 초에 이별하기로 합니다.

그때 얼마간의 폐인생활을 하면서 도로/철도교통쪽에서 학술과는 잘 안 맞는 것이 아닌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던 저는,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고 있던 석사 졸업을 뒤로 한켠 미뤄버리고 취업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심지어 장교 생활하면서 모았던 돈도 생활비 등으로 떨어져 갔기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때 떠올랐던 것이 항공이었습니다. 의외로 미개척 분야이니 내가 얻을 것이 반드시 있다, 항공기를 타고 저 멀리 떠나버린 그 친구가 혹여나 돌아온다면 여기서 기다려야 할까 라는 생각으로 취업을 준비했고,
다행히 포장이 잘 되어 ^^;;; 한국공항공사에서 돈이 다 떨어져 가는 저를 구제해 주어서 그리 들어가게 되었고, 이제 10년차네요.

정말 포장이 잘 되었던 것이 맞는 듯한게, 당시에 생각할 수 있는 행정직 루트가 경영/항공교통 두 개였는데,
저는 기존에 공부했던 도로/철도 쪽과는 크게 달라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항공교통을 선택하여 항공교통학개론 책 펴고 공부해서 최종합격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3
다만 나중에 김건모의 노래 '잘못된 만남' 가사 그대로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말았다는 게 서글픈(?) 일일 뿐이네요. 내가 소개시켜 준 사람이 이런 이별을 알고 접근해서 결국 사귀게 되었다고 공표를 하는.

이와 관련해 별 난리를 다 겪었는데, 다행인지 그 커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2016년 5월 22일에 페이스북에 적었던 글을 그대로 공유합니다.
다행히 마음 잡고 정제를 잘 했다...라고 자평하는 글입니다. 당시에는 세 번째 단락이 핵심이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나머지 두 단락도 현 시점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데는 도움이 되네요.

#
타인과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엔 우선 내 행동에 진실과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진실과 진심을 담아내면 그에 대한 보답은 반드시 주어졌다.

#
어린 날의 나를 되돌아보면 다행히 지금은 많이 성숙한 것 같지만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느껴진다. 자기중심적이고 급한 성격이 남아 있어, 매번 좀 느긋해졌으면 좋을 텐데 라고 다짐하지만 솔직히 쉽지가 않다.
이제 곧 내 나이도 계란 한판이다만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는 젊은 나이이다.
그럼에도 힘들다며 손 내밀었을 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니 그래도 이제까지 진실하게 살아온 것을 인정받는다고 느껴진다.

#
링컨의 명언 중 유명한 구절이 있다.
"몇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많은 이들에게 이 사실만큼은 뼈저리게 배웠고, 배운 대로 진실을 내 인생 최대의 가치로 삼고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이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감추고, 내가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은 것을 사실인 양 부풀려 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걸로 다른 이들을 잠시 속인다 한들 그때뿐이다. 진실을 감당할 준비, 되었는가.

ps. 며칠간 내색은 안했지만, 저의 멘토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심란할 때가 많았습니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것은 그런 마음을 정리할 정신적 여유를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제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 몇몇 분들에게 누가 되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혹여나 마음에 상처를 입으셨을 분들께 이 글을 빌어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4
당장 활주로 점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24년 1월 정기인사이동 때부터 6월 말까지 얼마간 교대근무를 하다가,
6월 24일자로 에어사이드운영부 사무실 일근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현장업무에서 조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보직 변경을 보면서 2015년 입사 시부터 지금까지의 제 근무형태 변경 내역을 보니, 정말 파란만장하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더군요. 처음에 이 부서 근무할 때 교대-일근-교대-일근-교대-일근을 오갔는데, 일근으로 있었던 적이 1개월, 2개월....인 걸 보면 그런 말 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근무변경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 제가 한국공항공사로 들어온 것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가 내 남은 인생을 책임져줄 만큼의 경험을 제공해 주리라는 것을 믿고 들어왔고, 향후 진로에 어떻게든 디딤돌이 되어 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더욱 높은 곳에서 반짝반짝 빛날 날이 있겠죠?
그러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과 공부를 같이 하다 보면, 엄청 재미있는 인생 흐름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