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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정책평가

오송역 개통, 그 뒤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1984년 이후 여객열차가 정차한 기록이 없는, 화물전용역이었던 오송역에 26년 만에 정규 여객열차가 정차합니다.[각주:1]
규모는 몇 배로 커져서 무궁화호 하나 설까말까 하던 역이 이제 경부선 21회에 호남선 4회가 정차하는 명실상부한 대형 역사가 되었고, 관리역 지위를 조치원에서 가져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송역 주변을 잘 살펴보면 실제로 청주 도심부와의 거리도 있는데다가 버스가 굉장히 우세하다 보니[각주:2], 수요 자체를 청주보다는 조치원이나 오송 자체에서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오송역을 이용하게 될 승객들은 주로 11월 이전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보건복지인력개발원의 공무원층과 조치원권에 있는 홍익대 조치원캠퍼스와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이용할 학생들이겠지요.

하지만 아래 내용을 본다면... 이런 상황을 마냥 축하할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올리는 게시물은 '분기역으로서의' 오송역의 내용이 아니고, '경부고속철도 정차역'으로서의 오송역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둘의 내용은 결과적으로는 서로 이어지게 되지만 말입니다.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충청북도와 청주·청원지역 이익집단들은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당초 경부고속철도는 청주권으로 들어가지 않을 예정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청주 시내로 들어가는 지선 정도만 기획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13대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때 "청주지역에 고속철도를 끌어오겠다"는 식의 지역공약을 내걸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 공약이 이행되지 않으려는 것 같자, 이상록 씨 등을 필두로 한 "경부고속전철 본선역 유치위원회"가 청주권 내 본선역 유치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한번 기사를 통해 보지요.

작년 6월 京釜고속전철 노선 확정발표 떄 서울~釜山의 중간역을 天安 大田 大邱 慶州 등 4개 도시로 하면서 대통령 선거공약에도 들어있던 淸州가 제외되자 忠北의 유지들이 들고 일어나 이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지난 7월18일 교통개발연구원이 주최한 경부고속전철 심포지엄에도 忠北지방의 유지와 淸州大 교수들이 대거 참석, 경부고속전철 본선의 淸州통과를 강력히 요구했다.

유치추진위원회 李相祿 위원장은 "인구 15만명인 天安과 慶州에도 본선역을 세워주면서 인구50만명의 忠北도청소재지를 비켜 지나간다면 1백50만 忠北도민의 자존심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처 : 동아일보 1991-08-19 5면 :  京釜고속電鐵 入札임박… 문제점 총점검 (5)『驛유치 경쟁』 갈등 우려


당연히 이 이후의 오송역 유치활동은 정상적인 활동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일상적인 활동은 가두홍보라든지, 리본달기운동 등 대단히 온건히 이루어진 것 같긴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오송역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은 역시 그걸 뒤집어 버리는 초 과격행동, 부강터널 점거사건이 아니었나 합니다.
부강터널 점거에 관련된 회고 형식의 기사가 분기역이 오송으로 확정된 직후였던 2005년에 7월에 정리되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보세요.

하지만 경부고속철도 청주역 설치가 애매모호해지자 13대에선 분과위를 교통체신위원회로 옮겨 고군분투했다. 이 때 정종택씨는 추진위 관계자들을 설득해 한가지 거사를 계획한다. 현재의 경부선 구간에 있는 청원 부강터널을 봉쇄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유치위 관계자들은 처음 놀랐으나 그 취지를 알아차리고 당장 행동에 들어간다. 느닷없이 부강터널 현지에 나타나 사진을 찍으며 법석을 떨자 이는 곧바로 청와대와 정부부처로 보고됐고, 긴급 대책회의까지 열리게 된다. 야당도 아닌 여당의원이 주민들을 꼬드겨 불법 시위를 벌인다는 자체가 정부로선 곤혹스러웠다. 청와대와 정부가 역으로 확인작업까지 벌였으나 이미 입을 맞춘 충북쪽의 으름장과 기세가 예사롭지 않자 이 때까지만 해도 '청주역 불가'로만 굳어졌던 분위기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정종택씨의 속내는 실제 결행보다는 적당한 협박이었다. 어쨌든 효과는 단단하게 나타나 얼마 후 청주역 설치, 다시 말해 경부고속철도의 충북 경유라는 낭보를 접하게 된다. 향후 역세권 인구 100만명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지루한 승부에서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 낸 것이다. 부강터널 협박카드(?)에 대해 당시 청와대를 출입하던 충청일보 유영혁기자(고인)는 후에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이 차마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퍼부었다”고 말해 당시의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충북의 거사계획은 청와대의 허를 찌른만큼 효과도 컸다.

출처 : 충북인뉴스 2005-07-14 : 오송분기역 부강터널 봉쇄작전에서 ‘분기’


최근 확인해 보니, 마침 오송역 개통 특집 중 이상록 씨의 회고를 담은 기사가 중부매일에 떠 있었습니다.
이 기사도 꽤나 흥미롭더군요.

▶당시 보도를 보면 오송역 유치에 우여곡절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에서 충북을 배제한채 조치원 서쪽 4-5㎞쯤에 위치한 금남으로 돌아가는 안을 주장했다. 추진위에서 건교부에 수차례 항의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이때문에 나와 박종원(전 한국병원이사장·작고)부위원장이 오송분기역으로 하지 않으면 부강-신탄진과 부강-내판간 협곡에 3톤트럭으로 폭탄을 실어 폭파시키겠다며 공공시설물이 파괴되지 않도록 재고하라고 서면으로 요구했다. 감옥에 갈 각오로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지만 당시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벼랑끝 전략이 통할 수 있었나요.

"당시 노태우대통령이 지역정서가 험하다는 보고를 받고 91년 9월 충북을 방문했으며 이동호 지사와 임인택 건교부장관을 청남대로 부른뒤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추진위도 기술적으로도 2.5㎞만 늘리면 오송분기역으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따라 1991년 임인택장관이 오송분기역을 승인했다."

출처 : 중부매일 2010-10-14 : "지금도 가슴 뭉클한 한편의 대하드라마" - 이상록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오송유치 추진위원장을 만나다

우선 어떻게 저런 말을 대놓고 할 수가 있지...란 생각이 듭니다. 교양 있는 분이 저런 말을;;
그리고, 각목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무려 "폭탄"이 있었군요.... -_-;;;;

사실 청주권 경유요구까지는 좋았는데, 국토해양부(당시 교통부)는 정말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합니다.
忠北지방의 최대 민원을 떠안고 있는 교통부의 고민은 이 문제가 淸州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淸州의 요구를 수용하고 나면 水原 金泉 龜尾 蔚山 등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를 모두 받아들이다 보면 뱀처럼 꼬불꼬불한 蛇行노선이 만들어져 고속전철의 근본취지가 무색해지고 만다.

출처 : 동아일보 1991-08-19 5면 :  京釜고속電鐵 入札임박… 문제점 총점검 (5)『驛유치 경쟁』 갈등 우려

....이렇게 고민을 계속하던 교통부. 결과가 어떻게 됐나고요?

결국 교통부는 "인구 100만을 넘길 것"을 전제로 오송으로 경부고속철도 노선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충청북도는 이후 일반적으로 혐오시설로 알려진 궤도기지를 오송에 유치하고,이제는 호남고속철도의 중부권 분기역 지위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대로입니다. 15년 떼쓰기가 오송분기역 사태로 결국은 성공한 거죠.
오송분기역을 폭풍같이 까는 디시인사이드 철도 갤러리나 레일플러스 등지에서도 다들 '경부고속철도 역'으로서의 오송역은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자체에도 이같은 지역이기주의로 점철된 역사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지어는 진 이상, 과소수요 현상만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그래도 앞서 이야기하였듯, 지금 예정 정차횟수만큼의 수요는 확보될 것 같아, 그 문제에서는 한시름 놔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ps.
1.
내일(10월 28일) 오송역 준공식에... 초대장은 받지 못했지만 뭐 다른 일도 있고해서 겸사겸사 방문할 예정입니다.
과연 청사모와 오송유치위의 주역들은 그곳에서 무슨 이야길 하고 있을까요?
괜히 궁금해집니다.

2.
"호남고속철도분기역오송(청주)유치백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마 각 대학교 도서관에 1부 정도는 있을 겁니다.
무려 "이상록 위원장의 친필 싸인과 함께" 말입니다.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다만 책 실물을 시중에서 구할 순 없습니다. 애초에 ISBN도 없이 제본 형식으로 만들어져 비매품인 책이라서요.
(그거 복사해서 제본하려면 4만원은 들 겁니다...)
  1. KTX 공사 기간에 공사관계자 통근 목적으로 통일호가 상하 각 1회 정차한 기록이 있으나, 논외로 합시다. 연보에도 기록이 안 나옵니다. [본문으로]
  2. 10~15분 간격으로 서울행 고속버스가 다닙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