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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정책평가

DIA 관련 잡설 2 - 정말로 용문착발 열차라도 만들게요?

입영훈련 갔다온 이후의 첫 포스팅이로군요.

입영훈련을 갔다와서 조금 더 전투적이 되어버린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번 포스팅에서는 수도권 전철과 일반열차가 경합하고 있는 중앙선 권역의 열차시각표 문제를 조금 빡세게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제목부터에서 보이시죠? 여기에 부제까지 달아버리자니 정말 내용이 길 텐데,

부제까지 포함한 정식 제목은 "정말로 용문착발 열차라도 만들게요?  - 수도권전철에도 경쟁력 없는 일반열차, 이대로 둘 것인가"입니다.

 

사실 KTX-2 운행개시 등의 이유로 2010년 4월 1일 열차시각표가 개정되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 개정 시각표의 발표 예정 일자는 2010년 2월 25일. 하지만 2009년 12월 23일에 수도권전철 중앙선의 국수 - 용문 연장구간 영업이 개시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코 빠른 것이 아닙니다. 개통 후 넉 달을 기존의 열차시각표대로 운행해야 하는 건 정말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은 그런 답답함 하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4월 1일 개정 열차시각표를 지켜봐야겠지요... ㅎㅎ

 


2009년 12월 23일 중앙선 국수-용문 연장개통으로, 수도권 전철 중앙선의 경기도권으로의 노선 확장이 거의 완결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구간에서는 정말 정시성과는 거리가 먼 열차시각표가 존재합니다. 물론 어떻게 보자면 폐색 간 거리가 엄청나게 길어 배차간격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산업선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정시성을 해치는 주된 요인이라고 보기는 힘든 게, 이 구간에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5년 12월 15일, 중앙선 청량리 - 덕소 구간의 복선화 개통 때부터였다는 겁니다.
2005년 이후 많은 문제들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에, 수도권전철과 일반열차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구간인 청량리 - 용문 구간이 완전히 개통된 이후에는 열차시각표가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철도공사는 현행 열차시각표를 3월에 KTX-II 운행이 시작될 때 함께 개정하겠다고 발표해 버렸습니다. 현 시각표가 신선 영업개시 후에도 국수 - 용문 구간의 개통 전처럼 운영할 경우 여러 가지 모순점들이 뻔히 보이는 시각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KTX-II 운행이 늦어지면서 이마저도 4월로 또다시 미뤄지는 상황이 만들어져 버리더군요.

 

2009년 12월 28일, 한국철도공사 수도권동부본부 고객대표 평가회의에서 결국 저는 본부 관계자분들에게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용문 착발 무궁화호 열차라도 만들 생각이십니까?"
물론 본부 측 관계자의 답변은 "그럴 생각 없다"였습니다. 그렇지만, “KTX-II와 함께 시각표를 개정하겠다”는 발상은 용문 착발 열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중앙선만이라도 열차 예매를 일시 정지시킨 후에 열차시각표를 개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즘 건설하는 노선들 치고 개통예정시기를 꼭 이번 달 내로, 이번 해 내로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공사를 100% 마치고 개통하는 노선들은 찾아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2005년 12월의 중앙선 청량리 - 덕소 복선화 노선 개통부터 이미 그 흐름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린 상황입니다.[각주:1] 덕택에 현재 수도권 전철로 신규 개통된 노선들은 선로의 안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입니다. 멀리 찾아보지 않아도, 선로의 안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열차는 절대 정시운행을 할 수 없다는 것[각주:2]을 KTX 개통 초기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빡빡한 열차운전시각표 등으로 인해 매 열차당 거의 5분 정도의 지연은 예사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수도권 전철 이용자들의 수요에 맞춰 주지 않을 수 없는 열차운용도 한 이유로 꼽힙니다. 보통 기존에 일반열차만 운행되던 노선에 수도권전철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실제로도 해당 노선의 이용객은 연보 상으로도 10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용객 차이가 그렇게 심하게 나다 보니 한국철도공사에서는 수도권전철 승객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해당 선구에서 일반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은 중앙선의 경우[각주:3], VOC(고객의소리) 유발량이 10배 이상 되는 수도권 전철 이용객들을 챙기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앞에 언급했던 사실들이 일리가 있다고 해서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들이 면죄부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열차시각표 개정을 하지 않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있는데, 한 가지는 고급 열차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잠재 수입을 떨어뜨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열차시각표 개정을 미룬다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의 성격을 띤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양평 - 용문 구간에서 현재 열차시각표상으로 무궁화호는 원덕역에 정차하지 않으며, 11~12분의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권 전철 열차의 경우 중간역인 원덕역에 정차함에도 불구하고 열차시각표 상으로 9분 30초가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무궁화호가 선로 조건 하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을 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열차가 정상 운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면 선로 최대 속력의 70~80%는 내야 합니다. 그런데 무궁화호의 시각표가 저렇게 되어 있다 보니 무궁화호는 수도권 전철을 추월하지도 못하고 수도권 전철 뒤에서 '기어가게' 됩니다.
이는 고급 열차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청량리 - 양평 간의 무궁화호 경로요금은 2,000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수도권 전철의 개통 이후 경로 승객들은 돈을 내지 않고도 청량리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급한 승객들은 무궁화호를 이용하도록 고급 열차를 경쟁력 있게 배차시키는 형태를 취해야 여객수입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텐데, 청량리 - 양평 구간에서 중앙선 수도권 전철 급행열차보다도 소요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각주:4]이라면 빠른 이동수요는 커녕, 고급 이동수요도 못 잡게 될 개연성이 큽니다. 수도권 전철의 경우 환승을 하지 않고도 청량리 이후의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편의성까지 추가되기 때문이지요.
한편, 실패사례기는 하지만 열차시각표 일부개정 사례가 이미 심심찮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예를 찾아볼까요. 2008년 11월, 경춘선 평내호평 - 대성리 구간 대부분의 이설이 완료 시점에 있었을 때 한국철도공사 수도권북부지사 영업팀에서는 열차시각표 개정 결정을 내립니다.

전기위험(by Tabipero) 2008-11-23 : 경춘선, 12월 1일부터 조금 빨라진다!

하지만 새로운 열차시각표에는 무리하게 무궁화호의 역간 소요시분을 줄여 놓았습니다. 해당 구간의 복선화 공사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어서 아직도 구 선로로 운행하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내호평 - 대성리 구간이 모두 신선으로 교체되었다고 가정하고 시각표를 짰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지연이 속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통 5분 지연이 예사라고 말하는데, 해당 구간에서는 20분 이상 지연이 한 달 내내 속출했습니다. 결국 수도권북부지사에서는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다시 시각표를 수정했습니다.[각주:5]

전기위험(by Tabipero) 2008-12-05 : 애매한 3분 그거 지연이라는 거야?

이를 통해 보듯이 한 선구만 열차시각표를 수정하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웬일인지 수도권동부본부에서는 이런 시도조차도 해 보질 않고 있습니다. 답답할 따름입니다.

 

지금 상황을 요약해 보면, 어떻게든 열차시각표 개정이 있어야 한국철도공사 입장에서도 여객수입의 증대를 기대하거나, 최소한 여객수입의 급격한 감소를 막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한국철도공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 전철과 무궁화호 열차의 경합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로 용문착발 안동, 강릉행 열차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1. 수도권 전철 노선이 연장되어 영업개시를 해도, 역에는 아직 공사가 덜 끝났다는 안내 표지판 혹은 A4용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본문으로]
  2. 개통 초기에는 선로 보수 수요가 많습니다. 덕택에 공사구간도 종종 생겨서 감속을 해야 할 경우도 심심찮지요. [본문으로]
  3. 무궁화호가 5량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만, 명절이 아닌 이상 절반도 못 채워 운행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4. 2009년 12월 23일 현재 청량리 - 양평 구간에서 열차운전시각표상으로 수도권 전철 급행은 44분, 무궁화호는 52분, 수도권 전철 완행은 59분 걸립니다. -_-!! [본문으로]
  5. 여담이지만 나중에 제가 그 주제로 수도권북부지사에서 말을 꺼냈을 때, 우진환 당시 영업팀장님은 "그런 걸 알았으면 진작 이야기해주지 그랬냐"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ㅅ=;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