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 석사과정 때도 한 적이 없던 구두발표를 파트타임 박사과정이 되어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할 때 거기에서는 학술대회에서 발표라도 하나 하면 논문자격시험이 면제되는 내규가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은 일을 무슨 포비아처럼 갖고 있다가 하지 않았던 건지,
반추해 보니 제가 그때는 교통 쪽 학술분야의 문법들을 많이 몰랐던 것 같습니다.
덕후질만 하다가 학술분야로 넘어가면서 분명히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었음에도 그에 대한 준비도 덜 돼 있었고, 또한 군 복무를 마치고 바로 대학원으로 넘어가서 물적 토대를 확보하지 못했던 상태였던지라 주변에 수없이 휘둘리던, 그런 시기였던 기억이 납니다.
2017년 8월에 제가 석사과정을 졸업하면서 쓴 논문은 "영남권 국제선 이용객의 공항 선택 모형 연구"였습니다.
그 당시에 부서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교대근무로 투입된 실망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논문을 쓸 만한 시간이 나오게 되어, 지도교수님의 출근 지시를 그대로 이행해서 야간근무가 있는 날은 그 다음날 아침 퇴근에 다음날을 쉬니, 쉬는 날 연구실로 출근해 가면서 220동 346호를 애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연구지역이 영남권이었던 이유는 "연구지역을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설정하여 그것을 연구의 차별성으로 두자"는 교수님 의견 때문이기도 하였으며, 제 연고가 영남 지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부터 전부 서울에서 나왔습니다만, 경상북도 영주 출생이고 아직도 외가가 영주에 있다 보니 경상북도 말과 경상남도 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따로 설문조사를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면서 자료를 수소문하다가, 회사 선배의 도움을 얻어서 "항공여객 이동특성 조사"라는 좋은 자료가 발견되어 쓸 수 있었던, 정말 졸고입니다.
"정말 졸고"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석사논문으로서의 최소한만 갖추었고, 내 논문이지만 그렇게 순탄하게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2년4개월 간의 군복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2011년 전기에 입학한 사람이 정상 졸업시기였던 2014년 후기가 아니라, 2016년 후기 졸업을 하는 것도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여 도서관 제출용 논문을 찍을 때 논문 출판의 최소한인 도서관 제출용 3부+개인소장용 2부 해서 5부만 찍을랬더니 30부 찍는 것과 비용이 거의 차이가 없어서 30부를 찍었는데, 그 중 당시 대학원 동료들이나 벗들에게 갔던 15부에는 이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실 이 논문을 시작할 수 있을지조차 몰랐습니다. 2017년 1월 23일, 일근으로 전환되었을 때 아무래도 석사 졸업은 많이 늦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신년회에서 선배가 ‘논문 쓰겠다’고 찾아와서, ‘나랑 같이 졸업하자’고 했던 그 이야기가 이제는 현실이 된 게 사실 많이 놀랍네요.
이렇게 졸업은 합니다만 사실 부끄러움의 연속입니다. 분명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이거 한다고 2010년 이후로 쓰지 않았던 R을 다시 잡아서 로짓 모형을 구동해보기도 했고요. 겨우 R의 코드 돌아가는 방식을 알아내니 중간심사 시기여서 중간발표 원고를 겨우 9장 써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 늦어지기 시작하니 계속 늦어져서 중간심사에서 최종심사 가는 과정에서 했어야 했던 모형의 수정 및 확정, 그리고 모형 해석의 보강 등을 일들을 최종심사 끝나고 논문 최종 수정 과정에서 하기도 했죠. 논문을 쓸 만큼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시도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하고 반추해 봅니다.
나름대로 최대한 부끄럽지 않은 논문을 만들려고 애는 썼는데, 부족한 티가 많이 납니다. 2016년 이화여대에서는 본관 점거 투쟁을 하면서 학생들이 안에 있던 교수들의 석사학위 논문을 구해다가 낭독한 적이 있다고 해요. 나중에 언젠가 그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하고, 선후배님들을 도와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도와야겠습니다.
이거 받는 여러분들은 다시는 제 논문같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논문을 만들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해 줬으면 해요. 동종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가끔 고기도 사달라고 하고 그러고. 사람과 교류 많이 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사실 석사학위논문 정도만 되어도 출판된 후 한번쯤 학회지에 더 기고되곤 합니다만, 2017년에 학회지 투고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어 왔던 제 자신을 약간이나마 반성하게 됩니다. 다만 그간에 쌓아 온 자산이 만만찮았던 것들이라, 다행히 그 자산들로 그간의 게으름이 벌충되는 느낌입니다.
무안공항에서 근무했던 4년(2019~2022)은 정말 큰 자산이었습니다. 회사에서 4급(대리)으로 승진하면서 연고가 전혀 없는 무안으로 갔지만, 2023년 서울로 발령나는 과정 중에 무안군청에서 공항 업무를 맡고 있는 미래성장과의 과장님에게 반농으로 건넸던 말이 "저 4년 근무하고 서울 가는데 무안학 학사라도 주셔야 하는거 아닙니까?"였을 정도라면 말이죠. :)
2020년에 광주여대 교수 한 분을 알게 되면서 (지금 그분은 부산외대에 있습니다...) 입사 당시부터 박사 생각이 없다던 것을 5년 만에 마음을 고쳐 먹었고, 2022년에 한국항공대학교로 학교를 틀었으나 무안을 벗어나지 못해 1년을 휴학한 후, 김포공항으로 원복해서 2023년 시작한 박사과정은 어느새 코스웍 마지막 학기인 4학기째이고, 졸업논문을 위해 쌓아야 하는 것들을 대부분 해내고 이제 제 앞에는 학술지 기고 점수와 졸업논문만 남았습니다.
다행인지 3학기째에 부서 사정으로 투입된 교대근무 탓인지, 석사 졸업학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쉬는 날에는 연구동으로 출근(?!)하고 기간중 스케줄이 되는 한도 내에서 연구모임도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이 때문에 풀타임 학생들과의 교류도 생기는 등 학교는 정말로 마음 편히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 주제는 "호남권 국제선 이용객의 공항 선택 모형 연구"였습니다. 석사학위논문에서 연구 지역이 바뀌고, 그리고 사용했던 설문조사 자료의 연도가 바뀌었습니다.(석사학위논문에서는 2016년 자료를 사용했습니다. 정식발표가 되기 전에 자료를 받았다 보니, 졸업 전엔 정식발표가 나야 한다고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나네요.)
계속 뭔가 해야지해야지 하다가 못 하고 있던 것을 3학기 때 교통계획 강좌를 항공대에서 다시 수강하면서, 그리고 풀타임 학생들처럼 연구실을 출근하면서 드디어 하게 되었다는 데 약간의 뿌듯함을 느낍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학위과정을 같이 보내지는 못했지만) 석사 때 입학 동기가 풀타임으로 연구를 계속해서, 어느새 교수가 되어서 좌장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사 학위과정을 같이 보냈던 타 전공의 벗도 박사를 교통지리로 하는 바람에 제 세션에 굳이 들어왔다는 것도.
어쨌든, 발표는 무사히 잘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발표 자료 원문은 대한교통학회 홈페이지에 공개로 올라가 있으므로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발표 PPT도 공개합니다. 학술발표회라면 이 정도 내용이면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정도로 자신감을 가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조금 더 발표한 자료들을 살피고 코멘트에 대해서 생각 조금만 더 하면서 논문 투고하는 일만 남았네요.
어디로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
여담인데, 서울시립대학교 교통공학과를 다니면서(주변 학생들 명찰로 추정한 것이지, 그 학생의 명찰을 본 것은 아닙니다. 여유가 없었네요.) 학회를 참가한 학부생 하나의 코멘트와, 정식 발표 세션이 끝난 뒤에 나눈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왜 행선지를 특정한 '공항'이라는 점으로 처리했는지 궁금하며, 행선지를 국가단위로 내용을 바꾸면 결과가 좀 달라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고민 한번쯤은 해봄직한 매우 흥미로운 코멘트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아 나도 저러던 시절이 있었지' 하면서도 '잘 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같이 머릿속을 스치더군요.
앞서도 이야기를 살짝 했지만 아마추어와 프로는 다릅니다만, 아마추어의 참신함도 때로는 프로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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