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Railro Project의 1일차 여행기입니다.
처음에는 상당한 스크롤의 압박이 존재했으나, 올해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여행기도 수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정작업을 하고, 접힘처리를 하였습니다.
철도동호인이 아닌 사람들이 읽기에 어려운 내용 등에 대해서 수정해서, 내용을 보다 읽기 편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S01. 여행 시작 전
전날 치요아범 녀석의 집에서 걔네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고, 또 난 아프간 사태에 관한 인터넷 글들을 지켜보고 하는 등의 일이 있어서 3시에서야 잠들었다. 덕택에 2시간 30분 자고 깨어난 코소.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치요아범 어머니의 차를 얻어 타서 출발지인 서대전역에 도착했다.
아침의 서대전역. 날씨가 흐렸다.
S02. #1422 (서대전 06:27 → 천안 07:19) \3,700 / 70.7km
Railro Project 2007에서 첫 발을 내디딘 차는 광주발 용산행 첫차 #1422였다. 치요아범 녀석이 이 시간대의 차를 굉장히 애용했던 모양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모임에 갈 때도, 대학 입시 때문에 서울로 올라올 때도. 열차에 오르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둘이 기차에 오르니 좌석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2000년 이후 새로 제작된 차량[각주:1]이기도 하고, 좌석을 잡지 못해도 장애인 전용석을 통해 좌석을 확보할 수 있는[각주:2] 3호차를 선택했다.
차에 올라 보니 생각 외로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 일반 좌석을 잡아 타고 갔다. 운좋게도, 이 자리는 천안까지 좌석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토요일인데다 승객이 집중되는 하계 대수송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좌석 점유율이라면, 주말에 내일로 티켓으로 호남선 쪽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이 열차를 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리라.
정말 아쉽게도 이 열차 안에서 본 것들 등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전날 두 시간 정도밖에 못 잤기 때문인지 너무 피곤했다. 치요아범 녀석은 줄곧 차 안에서 수면을 취했다. 필자는 신탄진 철교를 지날 때까지는 기억해 냈지만, 그 다음부터 천안역 도착 1분 전까지 필름이 끊겨 버렸다.
열차가 천안역에 도착했다. 비는 정말 매섭게 내렸다.
S03. 천안역에서
역무원이 계속 무표 승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나 남원 가야 돼. 늦으면 책임질 거야? 내가 잘못했으면 잡아가. 잡아가라고!” 하며 큰 소리를 치면서, 정작 역무원 분이 “경찰 불렀다”고 말하니까 “이미 늦었어” 라는 말을 하고서 그 어르신은 그냥 가 버렸다. 양복도 차려 입고 내려오신 분인 것으로 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교양은 있어야 할 사람 같았는데, 이 실랑이를 목격하고 보니 ‘역시 술이 문제인가’ 싶었다. 그리고 역무원들에게 왜 사법 경찰권을 주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가금을 받아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부가금을 받는 행위에 강제성이 없으니 이런 상황이 닥쳐도 어떻게 할 수가 있나.(정 사법 경찰권을 주기 싫다면 사법 경찰권이 있는 철도공안을 항상 대기시키든가 해야 할 텐데, 이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이 사태 때문에 새마을 #1151열차를 타러 내려갈 때 어르신을 상대했던 역무원 분에게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 정도는 드리려고 했는데, 그 분은 일이 바쁘신지 날 외면하신다. 그냥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S04. #1151 (천안 07:45 → 장항 10:14) \13,200 / 142.7km
차량은 7량짜리 PP-DHC 동차[각주:3]였다.
이 열차를 보면서 하계 대수송기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열차는 용산에서 06시 20분에 출발했다. 굉장히 이른 시간에 출발한 열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안역에 도착한 열차를 보니 좌석이 꽉 차 있는 것도 모자라 입석까지 받은 상태였다.(!) 덕택에 좌석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메뚜기질’은 꿈도 꾸지 못하고, 우리는 그냥 계단에 앉아 갈 수밖에 없었다.
좌석에 앉아 가지 못한데다 비까지 엄청나게 쏟아지고, 또 승하차하는 사람들 때문에 계단까지 축축한 통에 주변 경관을 외우면서 가는 것은 꿈도 못 꿨다. 이런 상황에서 여행을 이어간다니. 정말 생고생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런 사진도 잡을 수 있었다. 온양온천역에서.
홍성을 지나자 두 자리가 이어진 자리가 났다. 자리가 났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곧바로 달려가 털썩. 광천역쯤 도착하니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대천역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린다. 대천을 지나니 승객은 한 칸에 8~9명 수준.
이 열차는 유난히 교행을 위한 대기가 길었다. 온양온천에서도 반대편에서 오는 무궁화호를 기다리느라 8분을 대기했고, 간치역에서도 반대편에서 오는 새마을호 대기 때문에 6분을 더 잡아먹었다. 덕택에 판교역에 도착하니 이미 시각표상으로 장항역에 도착할 시간을 넘겨 버렸다. 도대체 열차 시각표를 어떻게 짰길래, 관제는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결국 열차는 장항에 무려 23분 지연된 10시 37분에 도착하고 말았다. 뭔가 계획이 심하게 꼬인 듯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바닷바람 심하게 부는 장항역에 내려 다음 일정을 향한 길을 재촉했다.
장항역에 도착.
장항역사.
S05. 배를 타다
장항역에는 장항-군산 간 배 시간표가 걸려 있다.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가깝다보니 교류가 많은 모양이다. 배를 타기 위해서는 도선장으로 가야 하는데, 장항역에서 장항도선장까지는 불과 10분 거리. 장항역을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틀어 쭉 가면 될 정도로 길도 단순하다.
장항 도선장 가는 길. 끄아아, 바람!!
장항 도선장이다.
마침 11시에 배가 있었다. 열차가 23분 지연되어 오기는 했지만, 장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시간이 줄었다는 점에서는 도리어 다행이었달까. 1,500원의 도선료를 내고 배를 타러 들어간다. 기다리고 있는 배는 금강 1호다.
배 안에서. 전날의 여파 때문인지 쩔어 있는 모습이다.
군산이 보인다!
S06. 철도가 아닌 버스로 익산가기
어차피 차를 놓칠 게 뻔해 보였던 상황이라, 한번 걸어서 가면 어떨까 싶어서 군산 도선장에서 군산역까지 걸어갔다. 군산의 중심가를 지나며 걸으니 역까지 25분이 걸렸다. 걸어서 25분이나 걸릴 정도면, 게다가 중심가를 지나야 할 정도면 택시로 5분이 걸릴 리는 없다. 통근열차를 타려는 시도를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역 도착.
군산역에 도착해 보니 다음 차는 3시간 후인 15시 15분에나 있다고 한다. 광주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이 있는 상황에서 그때까지 일부러 열차 하나 타겠다고 점심을 먹고 마냥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는 역에서 잠시 휴식 후,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시외터미널의 위치를 역무원에게 물어보았다. 시외터미널은 생각 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과선교 하나만 건너면 바로 시외터미널이라니. 허허.
시외터미널로 걸어가는 길에 철도 선로를 넘어가는 육교를 지나는데, 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화물열차가 마침 그때 출발하고 있었다. 잠시 ‘어차피 군산선 타는거면 익산은 무조건 가겠네. 화물열차 운전실에 태워달라고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불법이란 사실도 알고 하니 그냥 묵묵히 걸어갔다.
아, 화물열차...
시외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정오 가까이 되었다. 익산으로 가는 버스는 정확히 정오에 출발하는 것이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급한 나머지 표 파는 곳을 찾아 허둥지둥했다. 알고 보니 이 터미널에서는 자판기에서 표를 뽑도록 되어 있었다. 하긴. 근거리 위주로 교통수요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출발시각이 거의 임박한 상황에서는 그리 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버스표 가격은 2,500원. 각자 돈을 넣으려고 했는데 터미널에 있던 아저씨가 허둥지둥대는 우리가 안쓰러웠던 모양인지 그냥 만원짜리를 넣으라고 하신다. 그렇게 표 두 장을 빼고 바로 승차장으로 달려갔더니 버스가 막 출발하려 한다. 버스 탈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면서 승강장으로 들어와 겨우 버스를 세우고 승차했다.
원래 기차를 타고 가려고 했던 길을 버스로 가게 되다니. 그렇지만 호남의 넓은 평야를 버스로 지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버스로 가는 길은 철도와는 분명 다르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군산 - 익산 간 도로. 얼마 간 도로는 철도와 나란히 달린다.
군산에서 출발한 버스는 익산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서 익산역까지 우리를 태워 준다. 일단 뭔가를 사 먹기에는 시간이 워낙 애매했고 하니 식사는 광주에 가서 하기로 하고, 우리는 또 다시 열차를 기다렸다.
S07. #1111 (익산 12:46 → 광주 13:59) \10,200 / 109.8km
열차는 4분 지연되어 익산에 들어왔다. 어차피 익산 이남의 호남선 구간은 좌석이 절반 이상은 비게 된다. 주말이더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혹시라도 익산 이남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라면 주말에 내려가는 일정을 잡는 것이 편할 것 같다.
필자는 이 열차에서 노트북을 충전하면서 여행기의 중간정리를 계속하고, 치요아범은 새마을호의 TV를 잠깐 보다가 또다시 잠들어 버렸다. 필자도 결국은 여행기를 정리하다가 잠들어 버렸고, 잠을 깨어 보니 어느새 북송정신호장을 지나 열차는 광주에 가까이 오고 있었다.
광주역 도착. 정시 도착이다.
S08. 광주에서
친구 한 녀석을 만나 역 앞 국밥집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를 불러 야구를 보러 가기 전까지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나서 우리는 98번을 타고 무등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렇다. 이 패스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지방 야구장 투어도 같이 한 것이다. 그래서 가 본 기아 vs 롯데의 경기. 전날 대전에서 한화 vs 현대의 경기를 볼 때 롯데가 15-4로 기아를 ‘털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도 ‘뭐 기아야 보약이지...’ 하는 생각으로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선발 염종석이 1.1이닝 5실점으로 너무 일찍 무너지고, 구원 주형광은 최희섭에게 첫 홈경기 홈런을 헌납했다. 에휴. 7-0으로 롯데의 패배. 최희섭 홈런으로 인해 이 날 입장권이 기아의 올 시즌 잔여 홈경기 무료 입장권이 되기는 했지만 광주에 올 계획이 내년 5월인 나로서는 쓸모없는 이야기.
롯-기 전을 보러 경기장으로 가는 길.
S09. #1103 (송정리 20:54 → 목포 21:42) \7,500 / 66.8km
경기는 생각보다 이른 19시 35분경에 끝이 났다. 무등경기장으로 갈 때 탔던 98번을 타고 그대로 40분을 달려 송정리역에 도착했다.
20시 30분경. 송정리역 앞 김밥집에서 김밥을 두 줄씩 시켜 먹고, 목포로 가는 새마을호를 기다려 승차했다. 앞서 익산을 지나고 난 호남선 하행 열차들은 좌석이 남아도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송정리 이남은 더더욱 그렇다. 익산에서 내리지 않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송정리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맨 앞 노트북석을 잡고 콘센트를 연결하고 또 다시 노트북을 켠다.
열차 타러 갑시다♬ 6분 지연됐네요♪
광주는 그래도 잠시 동안은 맑은 날씨였는데, 목포로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밖을 보니 또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송정리에서는 마른벼락이 치고 있는 것만을 봤는데, 나주를 지나자 그 벼락이 우리가 타고 가는 열차의 뒤에서 쳐대기 시작한데다, 굵은 비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다음날 일정이 틀어지거나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거기서 우산 펴기가 싫다는 생각은 왜 들었던 건지.
일로역쯤 오니 차창 밖은 벼락도, 비도 없이 다시 조용해졌다. 임성리역을 지나 목포시에 다다르니 아스팔트 바닥 곳곳에 있는 비의 흔적들을 제외하고는 말끔하다.
차창 밖으로 목포 시내가 잠시 보이고, 목포시내를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 열차는 목포역에 다다랐다. 목포역에 온 우리는 수면을 취할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목포역에 도착한 새마을호. 디카가 너무 가벼웠기 때문인지 흔들렸다.
23시 10분에 출발하는 막차 때문인지 사람이 많았던 목포역 맞이방.
S10. 숙소로
수면을 취하는 데 있어 가장 싼 선택은 역시나 찜질방. 목포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찜질방을 찾아 목포 중심가를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찜질방 같은 것은 목포역 주변에는 보이질 않는다.
돌아다니다가 본 루미나리에 장식물.
하지만 그 여관에 들어가니 방이 다 찼다고 하면서 다른 데를 알아보라고 한다. 그래서 숙박업소 밀집지역을 돌아다니다가, 괜찮을 듯한 어느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숙박료 2만 5천원. 그 곳에서 우리는 각자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만만찮았던 오늘의 일정을 견딘 내 자신에 대한 나름의 포상이었달까.
(2일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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