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sonic/남길거리

직장 내 괴롭힘, 문제제기 후 1년이 지나서 쓰는 이야기

그동안에 글감이 없다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한 소회는 반드시 남겨야 할 것 같아서 키보드를 두들깁니다.

사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제 주변에 있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그제서야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했었는지를 깨닫기 시작했으니까요.

다행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업무에 국한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지만,
사실 당시 부서원들, 특히 제가 당한 것들은 다시 한번 봐도 어질어질합니다.
일단, 당시 문제제기 서류에 적었던 것들만 쓰면 이렇습니다.

○ (2021. 9.) 글씨체 및 구두점이 자신이 원했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서류를 집어던짐
○ (2021~2022 / 지속) 1시간 이상 회의를 빙자한 화풀이로 직원들의 업무 수행 방해
○ (2021~2022 / 지속) "네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 혹은 "입 닥쳐" 등 지속적인 폭언에 노출됨
○ (2022. 6. 15.) 상사인 본인의 지시를 일부 누락한 것을 핑계로 업무배제·인사조치를 운운하며 시말서 작성 강요
○ (2022. 11. 21.)  "너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싶다"며 폭언

"너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싶다"는 폭언은 사실 그 상사 본인의 타협불가 선언이었을테지만, 제 입장은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보수적인 공기업 분위기 탓에 전술한 사건 이외에도 그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참아왔던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전술한 이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인사발령이 예정된 그 아저씨를 고이 보내려 했었을 정도였습니만,
저 폭언은 "나에게 어떠한 변화를 기대하지 마라!"는 선언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이상의 연유로 2022년 11월 21일 그날 폭언을 들은 즉시 녹음하고, 2022년 이후 이제까지 그 상사의 언급이 하나라도 되었된 저의 진료기록(최소 6개월치)을 모두 복사하고 진단서를 받았으며,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및 본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 요령 등을 직장갑질119 권호현 변호사를 통해 자문받았습니다.

이쯤에서 왜 녹음이냐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직장 내 괴롭힘은 당사자가 이를 증명할 만한 수단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의 해결시에는 보통 외부에서 해결하지 않고 사내(社內)절차를 밟는 것이 원칙이기에, 당시 제가 겪은 경우에는 녹음파일도 괴롭힘의 증빙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단, 민사재판이 필요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다음날인 2022년 11월 22일.
정말 눈이 일찍 떠져서 06시30분에 회사에 도착해서 07시30분까지 글을 써내려간 후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접수하였으나,
문제제기를 한 후 주변에 이 이야기를 보여주니 자기 이야기는 빼 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이에 다음날인 23일에 해당 내용을 수정 제출하였습니다.

다행히 일은 쉽게(?) 진행되었습니다.
2년 이상 누적되어 있었던 저의 진료기록 및 처방내역은 결국은 남이 써준 나의 일기가 되어 버렸고,
심지어는 일련의 사태가 있는 동안 상급자에게 모두 보고를 했기 때문에 상급자가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었고,
또한 모든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의 녹음파일 등은 결정적 한방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그 동안에 제 주변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면서 모두가 피해자임에도 주변이 반드시 나의 편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

① 기록하세요. 반드시. 그 기록은 내가 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괴롭힘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라면 어떤 것이든지 모아야 합니다.
주변에 사건의 존재를 알리세요. 상급자라면 더 상급자에게라도 보고를 하세요. 아무도 모르는 사건이 갑자기 터지는 경우 아무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③ 내 편이 없는 상태에서는 문제제기를 해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내 편에서 봐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상황이 생겼을 때 뒷짐지지 않고 본인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22년 11월 28일에 본 사건과 관련한 감사실 조사가 나왔고, 다음달 초에 외부 노무법인 조사가 나왔습니다.
모두가 피해를 보았지만, 정작 문제제기로 인한 조사가 반복되니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오죽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7일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고충처리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다행인 것은, 감사실 조사가 나온 그날로 그 사람은 사라졌고, 새로운 사람의 발령 전까지 한 달 간의 짧은 평화가 부서에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다음날인 2022년 12월 28일, 저의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됨을 사장 직인이 찍힌 문서로 받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갑질을 저질렀던 상사에게는 경징계 권고가 나왔으나, 해당 건은 경징계가 아닌 경고로 종결되었습니다. 후일담을 들으니, 실제로는 견책이 나와야 할 상황이었으나 징계가 감경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직장 내 괴롭힘은 문제제기를 했던 2022년 11월 22일 당시의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서는 징계의 감경이 불가능한 사유였습니다. 2021년 12월 30일에 해당 규칙이 개정되면서 공무원 징계의 감경 불가사유에는 "우월적 지위 등을 이용하여 다른 공무원 등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는 등의 부당행위", 즉 직장 내 괴롭힘이 신설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기업은 보통 공무원의 규정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우리 회사의 내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징계를 감경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장관상을 하나 갖고 있었던 그는 그 때문에 징계가 감경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제가 했던 문제제기는 결국은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한 조직의 문화를 파괴하는 행위임에도 징계가 감경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제기가 미완성의 결과를 냈기 때문에 향후 제가 뜻하는 바에 동력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나를 괴롭히고 갑질을 일삼던 자와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겪은 건은 사이다엔딩이라기에도, 고구마엔딩이라기에도 뭐한 결과를 내고 끝났지만,
앞으로 이 비슷한 일들이 또 벌어진다면 그때는 피해자가 사이다엔딩을 볼 수 있도록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피해자를 위해 반드시 손 맞잡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11월 22일은 앞으로도  정말로  잊기 어려운 날이 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참고자료 두 가지의 링크를 게시하니 일독을 권합니다 :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2023, 고용노동부)

 

내일을 위한 고용노동부 - 고용노동부가 밝은 미래를 열어드립니다

 

www.moel.go.kr

일터에서,노동조합 활동에서 성희롱·괴롭힘에 대처하는 노동조합 대응 매뉴얼(2023, 민주노총)

 

일터에서,노동조합 활동에서 성희롱·괴롭힘에 대처하는 노동조합 대응 매뉴얼 - 문서자료 - 민

  목차   인사말   제1장 노동조합 대응매뉴얼 활용하기  1. 이 책의 제작배경  2. 이 책의 구성과 활용하기    제2장 직장 내 성희롱: 판단과 사례  1.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법적 규율의 전개

no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