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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멀리 떠날때/170619 Japan

1. 일본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 (1) 네무로 - 노삿푸 곶

이번 일본행에서 가장 처음 택한 장소는 네무로根室였습니다. 보고 싶은 것들이 좀 있었거든요.

일본 최동단이기도 하면서, 일본이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네무로로 가는 데는 하루를 다 써야 합니다.

삿포로에서 열차로 가는 것도 상당히 힘듭니다. 네무로까지 직통하는 열차가 있는 것도 아니요,

슈퍼 오오조라スーパーおおぞら를 타고 쿠시로釧路에서 환승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네무로까지는 빨라야 6시간 30분이 걸립니다.

그것도 아침 차로 갔을 때 이야기고, 7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도 허다합니다. 애당초 네무로까지 가는 열차가 하루 6편뿐인지라...

덕택에 저는 9박 10일 여행 중 JR 전국패스 개시를 3일차에 했습니다. 2일차까지는 쓸 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야행버스를 택했습니다. 버스는 삿포로 TV탑 옆의 오도리 버스 센터大通バスセンター 에서 출발합니다.

22시 30분에 출발하는 단 한 편. 오로라 호オーロラ号.

평일에는 22시 30분에 삿포로에서 2편이 출발하는 모양인데, 요금은 같습니다.

어차피 동네들이 전부 일본에서도 엄청 시골 동네인지라, 우회하더라도 그냥 버스를 오래 타는 편을 권합니다.


전 좌석 예약제라 사전에 좌석을 예약해야 하며, 예약은 여기서 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

터미널에서는 예약한 걸 뽑아서 보여주면 좌석번호를 알려 주니 거기 앉으면 됩니다.


버스 시각표입니다. 하루 1~2편 뿐입니다.




야행버스 안에는 화장실도 있고, 슬리퍼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습니다.

USB 충전 포트 같은 건 없더라고요., 새 차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1+1+1 배열이라, 개인 좌석이 보장됩니다. 저는 정 가운데의 15번 좌석을 받았습니다.



전 그냥 안에서 정신없이 잤습니다. 전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제대로 쉬지 않은 상태에서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에서도 제대로 못 자서 많이 피곤했거든요.

그런데, 승차감 같은 게 우리나라 프리미엄 고속버스랑 동급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 5시쯤 되니까 어메니티 서비스로 데운 물수건도 주더군요.

그때쯤 나카시베츠中標津를 지나서... 6시가 지나가니 운전조수가 차내의 커튼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거죠.

아침 7시. 버스는 네무로 역전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정말,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네무로는 정말 촌1동네입니다. 앞서 다루었지만 열차도 하루에 겨우 여섯 편입니다.

문 연 상점도 없고, 근처의 편의점은 최소 10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아침식사를 할 마땅한 식당도 열지 않아서 결국 편의점까지 걸어가서 삼각김밥을 사 먹어야 했습니다.



제가 가야할 곳은 노삿푸 곶納沙布岬이었습니다. 일본의 동쪽 끝.

물론 일본 정부는 북방 4개 섬을 일본령이라고 주장하고는 있습니다만,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려줘! 북방영토返せ!北方領土', '세대를 넘은 마음의 바람은 4개 섬 반환世代越え心に願うは四島返還', 그리고 '북방영토는 일본의 영토北方領土は日本の領土'

이런 거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좀 황당합니다. 얘네 분명히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아니던가요...


원래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는 일본이나 러시아 중 누구의 땅도 아니었습니다.

쿠릴 열도는 아이누의 땅이었지만, 국가를 구성하지 못한 아이누는 배제당하고 그 정해진 경계 안에서 소수민족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누식 지명을 음차하기 때문에 일본과 러시아에서 부르는 지명은 비슷합니다.

근대국가의 개념이 생기면서 구성된 국가끼리는 경계를 정해야 했죠.

1855년 러일 화친조약에서는 이투르프-우르프 섬 사이로 일본-러시아 국경이 정해지고 (이 북방영토가 자기네 땅이라는 근거입니다), 사할린은 일본-러시아 공동구역으로 두었으나,

1875년 사할린-치시마 교환조약(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는 러시아가 사할린을 소유하는 대신 일본이 쿠릴 열도 전체를 소유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그렇지만 전쟁은 기존의 조약을 깬 다음 이긴 쪽에 유리한 결과로 조약을 바꿔 놓지요.

이걸 깨고 1905년 러일전쟁의 결과인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기존의 조약을 깨고 사할린까지 차지했던 건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쿠릴열도까지 점령하였으며,

새로운 조건의 조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시기 팽창했던 모든 땅을 잃은 겁니다.

......그런데, 조약 마지막 과정에서 쿠릴 열도의 남쪽 4개 섬 (1855년 당시 일본령) 에 대해서 일본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문제가 시작된 거죠.


노삿푸 곶 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이 1시간 넘게 남아서 근처를 잠깐 돌아봤는데,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던 모습입니다.



미리 조사를 마치고 왔던지라, 노삿푸 곶으로 가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네무로 교통 홈페이지(일본어)에서 시각표를 제공하기 때문에 버스 시각도 파악하고, 요금도 편도 1,070엔인 것을 알고 왔는데...

왕복 승차권을 팔더군요. 왕복 승차권은 1,930엔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제가 탔던 버스는 08시 20분 노삿푸선 버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비슷한 시간대에 "노삿푸 호"라고 7.15~9.18 사이에 관광버스를 운행하고 있네요.

이건 또 1,850엔입니다. 야행버스를 타고 왔다면 / 쿠시로에 숙소를 잡아서 열차를 타고 왔다면 이용해볼 만한 코스인 것 같습니다.



버스를 40분 가량 타고 가면 노삿푸 곶에 도착합니다.

북방영토 자료관, 그리고 오로라 타워, 그리고 북방 4도를 상징하는 구조물 등이 모습을 보이는데...

오로라 타워는 흐린 날인데다 유료일 게 뻔해서 (조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올라갈 가치가 없어 보여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기저기 기록을 남겼는데, 음.... 뭐랄까요.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돌려받고 싶은 것까지는 알겠는데, 정말 기분이 나쁘더군요.

이게 무슨 1억 일본 국민의 혼이며, 일본 국민의 염원이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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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섬의 위치를 알려 둔 표지판, 그리고 바닥에 각 섬이 보이는 방향을 표시해 둔 페인트.

......얘네가 패전국이 맞긴 한 건가요. 도대체 무슨 양심으로 저렇게 쿠릴 열도의 4개 섬을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럴 걸 알고 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일본은 전쟁에 졌고, 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했는데 왜 아직도 미련을 갖는 건지 모르겠네요.

졌음 그냥 가만히 있지. 얘네들 전쟁 논리대로 전쟁에 이겨서 얻은 땅을 져서 뺏긴 것 뿐인데, 저기는 홋카이도의 부속 도서라는 건가요. 하하.



근처에는 역시 곶이다 보니 노삿푸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와 함께 철새 전망대 같은 것을 차려 놨더라고요.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오전에만 개방하는 듯한데, 바람도 적당히 피하면서 새를 보기에는 적절한 곳 같습니다.



그리고 "북방관"이라는 이름의 자료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북방영토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어 놓았더군요. 다만 나중에 보려고 전 사진만 좀 많이 찍어 놓았습니다.

이거 다 꼼꼼히 읽었다가는 버스를 놓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북방영토 관련 일본 외무성 자료도 자유롭게 가져가라고 놓여있길래, 하나 챙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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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봤던 북방영토 자료관에서는 일본 최동단 도달기념증을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네무로 시장 명의로 발급되며, 그냥 이름과 사는 곳만 간단히 적으면 됩니다.

그리고 북방 4도 반환의 염원을 담은 캐릭터 스티커와 배지도 나눠 주더군요.


당연히 저는 그걸 그대로 가지고 와서, 주변의 일빠 주라고 다른 사람 줬습니다.

저는 사진으로 기록은 남기지만 수집은 하지 않는 주의라, 필요하다는 사람 주는 편이 더 낫습니다.